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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반응형프톨레마이오스로부터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를 거쳐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천문학자는 우주의 규모가 비교적 작고 나이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추측했다. 19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규모가 훨씬 크고 오래된 우주에 대한 사변적인 이론들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우주의 광대하나 규모와 장구한 역사에 대한 증거들이 축적되었으며 새로운 우주 이론들이 종교적 믿음과 관련하여 중요한 문제들을 제기했다. 1917년 윌렘 드 시터(Willem de Sitter)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방정식들의 풀이 가운데 팽창하는 우주를 예측하는 해(解)를 찾아냈다. 1929년 에드윈 허블(Edwin Hubble)은 멀리 있는 성운으로부터 오는 빛들의 적색 편의를 검토하면서 허블의 법칙을 추론해 냈다. 이 법칙에 따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유추를 통해 과학자들은 우주가 약 150억 년 전부터 하나의 근원에서 계속 팽창한 것으로 보인다는 빅뱅이론(대폭발이론이라고도 한다)을 이끌어냈다. 천문학과 고에너지물리학의 연구로부터 얻은 증거들을 종합하면 그럴듯한 우주의 역사를 재구성해 볼 수 있다. 빅뱅이 일어난 지 3분 후에 양성자와 중성자 들은 결합 하여 핵을 형성했고, 50만 년이 지나서야 원자들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빅뱅 후 10억 년이 지나자 은하와 별들이 형성되었으며,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 행성들은 빅뱅 후 100억 년이 흐르고 나서 형성되었다. 우리 지구가 형성되고 다시 20억 년이 흐른 다음에야 현미경으로 보아야 보일 만한 크기의 생명체가 지구상에 출현함으로써 생물학적 진화가 시작되었다. 빅뱅이 일어난 지 3분 이내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우주의 모습에 대한 이론적인 예측은 점점 가설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초기 우주에서의 물질과 에너지의 상태는 우리가 실험실에서 재현해 낼 수 있는 상태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양성자와 중성자는 빅뱅 후 10초(1만 분의 1초)만에 쿼크들이 결합함으로써 형성되었을 것인데, 그때쯤 우주의 온도는 1012℃였다. 어마어마한 고온의 쿼크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고밀도 상태에서 존재하기 시작한 것은 빅뱅 후 약 10-10초가 지났을 때부터일 것으로 생각되며, 그때의 우주는 작고 매우 뜨거운 불덩어리 상태였을 것이다. 교황 피우 12세는 빅뱅이론이 창조에 대한 성서적 착상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 천체물리학자 로버트 재스트로(Robert Jastrow)는 천문학적 증거는 이 세계의 기원에 대한 성서적 견해에 이르도록 한다고 주장해 왔으며, 자신의 저서《하나님과 천문학자들(God and the Astronomers)》의 마지막 단락에서 다음과 같은 인
상적인 말을 했다. 과학자들과 신학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창조 교리가 특정한 과학 이론과 동일시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제 여기에서 과학과 종교에 대한 네 가지 견해중 하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최근의 우주 이론들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자.1. 갈등이론
과학과 종교 간에 빚어지는 갈등의 하나는 무신론자에 의해서 야기된다. 무신론자는 초기 우주에서의 힘의 균형이 생명과 지능을 출현시킬 만한 조건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우연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와는 반대로 성서의 무오류성
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상대성이론이 <창세기>의 설명을 빅뱅이론과 조화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주장한다.1) 우연에 의한 우주
일부 우주론자들은 우주의 물리적 변수들의 수치는 여러 개의 우주가 있었을 수 있음을 가리키며, 우리는 단지 지적인 생명체에 적합한 것으로 판명된 조건을 지닌 우주에 우연히 살게 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나의 우주 안에서는 거의 불가능
해 조이는 물리적 변수들의 조합이라 하더라도 많은 수의 우주들을 가정하면 그 가운데 어디에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우주의 존재를 가정하는 다우주이론은 단 한 번의 빅뱅이 내포할 수 있는 유신론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일부 우주론자들에게 환영받는다. 그런 다우주이론에는 다음과 같은 이론들이 있다.(1) 진동하는 우주의 연속 주기
우리의 우주는 현재의 팽창기 이전에 수축기를 거쳤을 것이라는 이론, 즉 빅뱅 전에 대붕괴가 일어났을 것이라는 이론이다.(2) 다중 고립 영역들
계속되는 주기들 사이에서 여러 번 되풀이되는 폭발들 대신 단 한 번의 빅뱅이 동시에 존재하는 여러 개의 영역을 만들어 냈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분리 고립된 영역들에 대한 이론은 원리상 검증이 불가능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과학적 증거보다는 철학적 가정이다.(3) 다세계양자이론
휴 에버릿(Hugh Everett)의 주장에 의하면 원자 내부에는 양자 수준의 확정 불능성이 언제나 존재하며, 우주는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데 각 갈래에서 잠재적 가능성들 가운데 하나가 실현된다고 한다. 양자이론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우주에 대한 믿기지 않을 정도의 다중성을 내포한다. 이 이론은 퍽 사변적인 데다가 이렇게 갈라져 나온 우주들 간의 교신이 불가능하므로 직접 증명될 수 없다.
(4) 양자 진공 요동
양자이론은 에너지보존법칙이 아주 짧은 동안 붕괴되는 것을 허용한다. 단, 곧바로 회복되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일부 학자들은 양자요동이론을 무로부터의 창조에 대한 비종교적 이론으로 제시해 왔다. 여기에서 '무'란 이 이론이 진공으로부터 시
작하는 것을 가리킬 뿐이다. 진공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양자장과 양자물리학의 법칙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정하는 무신론자의 주장이다.2) <창세기>와 빅뱅 이론을 조화시키려는 노력
슈뢰더는 급속하게 팽창하는 우주 안에서 하나님의 시간으로 하루는 전체 우주와 동일시되는 지구상에서의 과정으로 보면 수십억 년에 해당된다고 했다. 그 우주 시간으로 여섯 번째 날 아담을 창조하시면서 하나님은 처음으로 우리의 행성 지구와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그 후 우리의 시간 척도는 하나님의 시간 척도와 일치되었으며, 성서에 기술된 그 이후의 사건들에 대한 연대기(아담의 모든 후손들의 수명을 포함)는 정확하게 우주 시간 척도로 기록되 있다고 한다.
휴 로스(Hugh Ross)는 천문학 박사이며 복음주의 교회 신도이다. 그는 초끈이론의 10차원과 자신이 명명한 하나님의 특별 차원성에 대해 자신의 저서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 하나님께서 이 현상 세계를 창조하시기 저에 하셨던 일을 기술한 성서
의 구절들, 이를 테면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기 전에"(<베드로전서>1장 20절) 같은 구절을 인용했다. 이로 미루어 하나님은 틀림없이 추가적인 시간 차원하에서, 즉 10차원이 아닌 11차원이 되는 영역에서 일하셨을 것이라고 로스는 주장했다. 로스에 의하면, 우리가 생활에서 경험하는 사건들은 원인이 결과에 앞서는 수평적인(정상적인) 시간 차원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 차원은 우리의 시간차원과 수직 관계를 이루고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가 경험하는 바와 같은 시간 순서로 나열되는 사건들을 동시에 마주하실 수 있다. 또한 로스는 이와 같은 논리가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예정 사이의 오랜 모순 관계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보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시간틀 속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선택은 모두 하나님의 통합된 지식과 행위 안에 포함된다.2. 독립이론
과학과 종교는 각각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주체들로서 창조 설화가 인간 생활에서 수행하는 기능 역시 과학 이론들과 연관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살펴보기로 하자.1) 창조의 종교적 의미
<창세기>는 세 가지 신학적 선언을 하고 있는데 (1) 이 세계는 본질적으로 선하며 질서 정연하다. (2) 이 세계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3) 하나님은 주권자이시자 자유로우신 분으로서 초월자이시자 목적과 의지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이야
말로 <창세기>가 단순히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서술이 아니라 모든 순간 인식될 수 있는 이 세계와 하나님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성서 안에서 하나님에 의한 창조에 관한 생각은 언제나 구속사상과 결부되어 있으므로 <창세기>를 단순히 이 세상의 시작에 관한 서술로만 볼 것은 아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조란 시간 속에서의 한 사건이 아니며 시간은 이 세계와 함께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말하자면 창조는 시간과 함께 출현하는 무시간적인 행위이자 하나님이 이 세계를 유지시키시는 끊임없는 행위이다. 그에 따르면, 창조된 세계가 존재하지 않으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세계를 창조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는 시간 속에서의 시작을 성서와 기독교 전통의 일부로 받아들였고, 시간 속에서의 창조는 하나님의 권능을 확실히 깨닫게 해 준다고 말했다. 그런 한편 그는 항상 존재했었을 우주도 마찬가지로 창조주이며 그 유지인(維持人)이신 하나님을 필요로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학적으로 중요한 내용은 태초의 시작을 언급하지 않거나 한 번의 특이한 사건에 관계없이 진술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우주론적 증명 가운데 하나의 시간 속에서의 시작을 가정했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아퀴나스에 의하면,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은 다시 그 이전 원인의 결과이므로 결국 인과관계의 사슬이 시작되는 제1원인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나 그는 또 다른 증명에서 "도대체 왜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라고 묻고 나서, "인과관계의 전체 사슬은 그것이 유한하느냐 무한하냐에 상관없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라고 대답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먼저 계셨다는 주장은 시간적인 관점이라기보다는 형이상학적인 것이다.성서 시대로부터 현재까지 창조론에는 연속 창조라는 부수적인 주제가 함께 다루 어졌다. 에드먼드 제이콥(EdmundJacob)은 성경에는 태초의 근원적인 창조를 언급하는 구절들이 여럿 있으나, "일반적으로 보다 오래된 다른 성경 구절들을 보면 창 조와 이 세계의 보존을 굳이 구별하지 않았으므로 우리가 연속 창조에 대해 언급할 수 있게 해 준다"라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자연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통해 창조하고 계신다.
2) 창조 설화의 기능
<창세기>보다 오래된 바빌로니아 창조 설화에서도 이 세계는 원초적인 물속의 혼돈으로부터 시작된다.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바다의 괴물 라합인데, 라합은 성경의 여기저기에 등장한다. 히브리어 경전들은 질서와 혼돈의 끊임없
는 투쟁을 가정하며 악의 존재와 창조의 허약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성서에 기록된 내용은 하나님의 주권과 초월성,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다른 고대 설화들과 차별된다. 하나님은 말씀만으로 창조하시는 권능 있고 의지적인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는 전반적인 계획에 따라 질서 정연하고 세심하게 배려된 것으로, 전체적인 조화 속에서 상호 의존적인 모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바빌로니아 설화에서의 인간은 신들의 노예를 공급하기 위해 창조되었으나,
<창세기>에서의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다른 피조물보다 우월한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았다. <창세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신념은 바빌로니아 설화의 것과는 다르지만, 똑같은 기증을 수행하며 똑같이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창조에 대한 사상은 오래 지속되는 인간 경험들, 곧 (1) 삶의 의존성, 유한성, 그리 고 우발성에 대한 깨달음, (2)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 신뢰와 감사,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긍정, (3) 현상 세계의 상호 의존성, 질서,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 등을 표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창조에 대한 종교적 사고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서 의 생명에 대한 경이와 감사로부터 시작되는데, 신학 교리들은 그러한 경험들을 특정한 역사적 전통의 맥락에서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창조의 신학적 의미는 고대나 현대의 다양한 물리학적 우주론들과 결합될 수 있으나 어떤 한 우주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독립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천문학자들에 의해 제기되는 질문과 신학자들에 의해 제기되는 질문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학과 종교의 탐구 방식은 모두 선택적이라서 취약점을 지니게 마련이다. 언어분석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이 지적해 온 바와 같이 과학의 언어와 종교의 언어는 인간 생활에서 서로 다른 기능들을 수행한다. 과학의 목표는 자연 현상들 가운데 법칙적인 관계를 이해하는 것인 반면, 종교의 목표는 의미라는 한층 큰 틀 안에서 특정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다.3. 대화이론
대화이론의 지지자들의 생각에 의하면, 과학은 전제 조건을 가지며 과학 자체가 답할 수 없는 한계 질문들을 제기한다. 그리고 이들은 과학과 종교의 구별을 인정하고 두 분야 간의 사려 깊은 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우주론을 중심으로 한 과학
과 종교 사이의 대화 주제로는 우주의 이해 가능성과 우발성을 들 수 있다.1) 우주의 이해 가능성
물리학자와 천문학자 들은 자연계의 힘과 물질을 궁극적으로 규명할 통일이론을 탐구한다. 통일이론은 그들이 찾아 헤매는 성배라 할만하다. 통일이론에 대한 추구는 우주가 질서 정연하고 단순하며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으로부터 출발했다. 역사적으로 우주가 통일적이며 이해 가능한 것이라는 확신은 그리스 전통과 성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스인들과 로마 시대의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우주를 단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았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성의 힘을 굳게 신뢰했으므로 수학과 기하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토머스 토랜스는 '우발적 질서'라는 주제를 폭넓게 다루었다. 그는 자발적인 선택 행위로써의 창조 행위에서 하나님의 자유를 강조한다. 하나님만이 한없이 자유로우시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는 이 세계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의미에 서 이 세계의 존재와 구조는 우발적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아인슈타인은 우발성에 대한 주장을 이 세계의 합리적인 모습에 대한 믿음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이 세계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과학의 중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세계의 합리적인 모습 또는 이해 가능성에 대한 확신은 종교적 예감과 유사하며 질서를 탐구하는 모든 과학적 연구의 밑바탕을 이룬다"라고 말함으로써, '우주적인 종교적 깨달음'과 '이 세계의 합리성에 대한 확신'에 관해 언급했다. 존 폴킹혼의 주장에 의하면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는 일은 수학, 곧 인간 정신의 창안에 달려 있다. 이 세계가 정신이 창조해 낸 것이라면 우리의 합리성과 물리적 세계의 합리성이 들어맞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신과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세계의 합리성의 공통 근거이시다. 질서 정연함은 하나님의 완벽한 모습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테지만 우연의 중요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2) 우주의 우발성
현대우주론에서의 우주는 다음과 같은 네 종류의 우발성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1) 우발적인 존재
도대체 왜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 신학자들은 이 질문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 질문은 이미 언급했던 무로부터의 창조가 지니는 종교적 의미와 일치한다. 우주가 시간적으로 무한하냐, 유일하냐에 관계없이 우주 전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현재로서는 빅뱅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되는 단 한 번의 사건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과학자들이 윤회적인 우주 또는 무한한 시간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찾아낸다고 해도 우주가 존재한다는 우발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과학적 우주론들의 세부 내용은 이 세계의 우발성과는 상관없다. 어떤 이론이 우주가 단 하나만 존재함을 입증할 수 있더라도 그 우주는 여전히 가능성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 과학 이론의 어떤 부분도 하나의 우주가 실제로 존재한다거나 그 이론이 실증될 수 있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스티븐 호킹은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가능한 단 하나의 통일이론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몇 개의 규칙과 방정식의 집합에 불과하다. 그 방정식에 숨결을 불어넣어 그 방정식과 규칙들이 설명하는 우주를 만들어 내는 것은 무엇인가? 수학적 모델을 세우는 과학의 일반적 접근 방법으로는 그 모델이 설명하려는 '왜 우주가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
(2) 우발적인 경계 조건들
호킹은 무한대의 시간이나 시간의 시작, 그 어느 것도 가정하지 않는 양자 중력에 대한 이론을 내세웠다. 그 대신 시간은 역설적이지만 유한하면서도 경계 지어지지 않는다. 초기 우주에 대한 그의 방정식들은 가상의 시간(허수 시간)을 필요로 하
는데, 이 허수 시간은 세 개의 공간 차원과 구별되지 않는다. 마치 지구의 2차원 표면이 유한하지만 가장자리가 없는 것처럼, 3차원의 상대론적 공간은 유한하지만 경계 지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호킹의 공간적이고 가상적인 시간 차원들은 모두 유한하지만 경계 지어지지 않는다. 그런 가상적인 허수 시간의 틀 안에서 실제 시간이 점차적으로 출현한다. 호킹은 허수 시간 속에서 사건들을 해석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음을 인정했고, 일부 학자들은 출현이란 실수 시간에서의 변화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시간이 출현한다고 말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시간이란 초기 단계에서는 명확하지 않았고 시작이라고 불릴 만한 뚜렷한 경계가 정해질 수 없다 하더라도 호킹의 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생성되도록 주어진 구조, 즉 물리적 관계의 구조를 자명한 것으로 가정한다.(3) 우발적인 법칙들
우주론의 법칙들 가운데 여러 가지가 임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가운데 몇몇은 좀 더 근본적인 이론들의 필연적인 함축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그러나 통일이론이 발견된다면 그 자체가 우발적인 것이며 위에 언급된 종속 관계가 한 단계 더 생기게 된다. 물리학에서의 통일이론을 만유이론이라고 부르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왜냐하면 통일이론은 이 현상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다양성과 개별성, 그리고 하위 수준의 조직화로부터 더더욱 복잡한 상위 수준의 복잡화가 출현되는 점 등을 모두 무시한 고도의 추상 과정을 통해서만 수립되기 때문이다.
(4) 우발적인 사건들
우주에 대한 설명은 일반적인 법칙들로만 구성되기보다는 역사적인 모습을 갖추어야만 한다. 진화 역사에 영향을 주었던 돌연변이, 유전자 재조합, 그리고 환경 조건들 가운데에서조차 우리는 유사한 우발성을 생각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과학자
가 순전히 과학적인 문제들만 다루려고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학자들은 유물론적인 철학을 따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주론을 좀 더 폭넓게 검토하는 것은 앞에서 언급했던 한계 질문들을 다루는 중요한 방법으로 볼 수 있다.4. 통합이론
통합이론의 지지자들은 대화이론의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것 이상으로 특정한 종교적 신념과 개별적인 과학 이론들 간의 밀접한 연관성을 모색한다. 인간주의원리는 우주론으로부터 출발하는 새로운 행태의 자연신학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최근의 우주론에 입각하여 인간의 신학적 중요성을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1) 우주의 설계 : 인간주의원리
많은 우주론자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은 몇 개의 기본 변수의 값에 달려 있으며 그 값들에 놀라울 정도로 매우 민감하다는 사실을 지적해 왔다. 이렇게 잘 조율된 현상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팽창 속도
우주의 팽창 속도는 초기의 폭발 에너지, 우주의 질량, 중력의 크기 등 여러 요소에 달려 있다. 우주는 칼날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2) 원소들의 형성
강한 핵력이 조금만 약했더라면 우리 우주는 수소원자만 지니게 되었을 것이며, 조금만 강했더라면 모든 수소 이온은 헬륨 이온으로 변환되었을 것이다. 위의 어떤 경우든 안정적인 별들과 물과 같은 화합물은 형성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 핵력
은 겨우 탄소를 형성할 정도였지만, 마찬가지로 그 힘이 조금만 강했더라면 모든 탄소가 산소로 바뀌었을 것이다. 탄소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유기생명체의 출현을 좌우할 결정적인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3) 입자와 반입자의 비율
초기 우주에 반양성자와 양성자의 비율은 1억 대 1억 1이었다. 곧 1억 개의 양성자와 반양성자의 쌍들이 서로 반응하여 소멸되어 복사 에너지를 방출하는 과정에서 단 한 개의 양성자가 남았다. 그렇게 반응하지 않고 남은 양성자의 수가 조금 많았거나 전혀 남지 않은 경우(반양성자와 양성자의 비율이 1대 1이었을 경우),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들로 구성된 우주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리학의 법칙들이 입자와 반입자 사이에 대칭적이라면, 왜 이와 같이 아주 미소한 비대칭이 존재했던 것일까? 인간주의원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우리 우주에서 상수들이 알맞게 조합된 것은 수많은 우주들(그 대부분에서는 생명의 출현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가운데에서 일어난 우연한 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견지한다. 다른 비판자들은 언뜻 보기에 임의적인 상수들의 조합은 아직까지 과학이 알아내지 못한 모든 것을 포괄하는 단 하나의 방정식으로부터 유도될 수 있다고 추측한다. 아마 그 방정식은 생명체를 포함할 수 있는 유일한 우주는 현재의 우리 우주와 같은 상수들을 갖는 우주임을 보여 줄 것이다. 이것은 일단 우주가 존재하게 되면 상수들은 필연적인 것이지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의미한다.2)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모델들
과학과 종교가 관찰할 수 없는 실체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상상의 모델들을 활용한다. 그리고 때때로 한 가지 이상의 모델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전자에 대한 파동 모델과 입자 모델,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모델과 비인격적 모델 등이 그
것이다. 모델들은 과학적 이론과 신학적 교리를 바탕으로 개념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것이고, 이들 이론과 교리는 각 공동체의 경험에 입각하여 검증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성서적 개념은 현대과학에서 가져온 비유를 제시한다. 정보의 전달은 통시이론과 컴퓨터 네트워크, 생물 내 DNA작용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어느 경우든 정보의 전달은 선택적 반응(해독)과 좀 더 광범위한 맥락에서 특정 메시지에 대한 해석을 필요로 한다. 존 폴킹혼을 비롯한 많은 연구자들은 과학 법칙에 어긋나지 않게 정보를 전달하시는 분으로 비유된 하나님을 정보 전달자 모델로 제시해 왔다. 이 세계가 더욱 폭넓은 맥락에서 해석될 때 거룩한 말씀에 대한 성서적 사고는 합리적 구조와 의미를 전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과학을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증명으로 가 아니라 하나님을 언급하기 위한 새로운 비유의 근원으로 활용한다.3) 인간의 중요성
다윈은 하나님의 우주적 설계의 중심에 있던 인간의 위상을 격하시킴으로써 인간 생명의 중요성에 대한 성서적 이해에 도전한 셈이 되었다.(1) 공간과 시간의 광대함
광대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은 아주 보잘것없다. 그러나 오늘날 그러한 광대함은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듯한데, 현재의 과학 지식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에는 수조 개의 뉴런이 존재하며 그것들을 연결하는 방법은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원자들의 수보다 많다. 더욱더 높은 수준의 조직화와 풍부한 경험은 생명이 없는 수천 개의 은하보다는 단 한 사람에게서 볼 수 있다. 어쨌든 우주의 광대무변함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인간이다.(2) 상호 의존성
우주론은 진화생물학, 분자생물학 그리고 생태학 등과 함께 모든 사물의 상호 의존성을 보여 준다. 우리는 현존하는 공동체의 일부이며 과거와 현재의 모든 피조물과 친족 관계를 이룬다. 우주물리학의 연구 성과들은 우리가 물리적 사건들의 공통
유산에 빚지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3) 다른 행성의 생명체
행성은 매우 많기 때문에 그중 극소수만이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하다고 해도 생명은 우주의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다.1999년 허블 우주 망원경을 이용한 관측을 통해 하나 이상의 행성을 지닌 태양 이외의 별에 대한 증거를 찾았다. 창조의 하나님 그 말씀이 전 우주에 걸친 끊임없는 창조 가운데 살아 계시다면, 그것은 공간적·시간적으로 전혀 다른 곳에서 그것에 존재하는 생명체에 알맞은 방식으로 구속의 능력인 자신을 드러내었을 것이라고 가정해 볼 수 있다. 이제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이미지는 우주 규모의 창조와 구속에 걸맞은 것이어야 한다.(4) 우연과 목적
전통적으로 창조론에서 하나님의 목적은 질서와 동일시되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강조는 모든 것이 구체적인 하나님의 계획에 맞추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신적인 결정론으로 이어져 어떠한 우연의 요소든 하나님의 전반적인 지배에 대한 위협으로 비추어졌다. 따라서 우연의 역할에 깊은 인상을 받은 일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유신론을 거부하게 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생명을 우연에 의한 뜻밖의 결과로 보며, 우연과 유신론은 양립할 수 없다고 가정한다. 하나님의 설계를 알고 깨달은 사람들은 은혜와 감사를 느끼지만, 우연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은 인가의 보잘것없음과 우주적 소외감을 느낀다. 우리에게 우연처럼 보이는 모든 사건들, 즉 양자의 불확정성, 진화적 돌연변이, 인간 역사의 사건들 모두를 하나님께서 지배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과학이 알아낼 수 없는 미묘한 수준에서 신적인 결정론이 유지된다고 본다.-- 결론 --
세상은 과학문명의 발달과 함께 사람의 행동양식 그리고 삶의 방향, 특히 인식하고 있는 사고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끊임없이 변화해 가고 있다. 과거 갈릴레오가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한 것과 같이 시간과 과학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진실을 발견해 가고 있다. 이처럼 진실을 밝히는 과정 속에 과거의 이론과 주장을 뒤엎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와 아픔이 따르는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이것은 모두 대화의 방향이 “난 맞고 넌 틀렸어”라는 일방성에서 갈등의 골이 커 가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갈등의 고리들도 발전해 가는 과학의 문명을 뛰어넘을 수 없다. 수많은 연구자들 그리고 과학자들이 그 자리에서 지켜 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과학이 좀 더 인간의 이성과 이해를 더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서론에서 전제했던 것처럼 갈등이론은 이미 무신론 자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 우연의 일로 일단락 시켜 버렸고 종교계는 빅뱅이론을 통하여 창세기를 동일시하는 연구의 노력을 하고 있음에 서로의 갈등 속에서 서로의 이론들만을 내세우고 있는 것 같다. 우연이라고 전제하는 이론은 동기는 알지만 결과를 알 수 없기에 가능성을 열어두며 우연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시간이 흘러 정확한 보고가 있을 때는 말을 바꾸기가 쉽기 때문이다. 독립이론은 과학과 종교는 다르다는 전제하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가십거리가 될 소지는 없어 보이지만 서로 간에 열어놓고 대화의 창을 열어 놓아야 함도 중요하게 생각된다. 대화이론은 앞서 말한 두 이론보다는 더 서로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문명의 발전에 따라 우주론을 중심으로 접근하여 빅뱅이론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자세가 좋다. 통합이론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정말 바람직한 이론이 아닌가 싶다. 이 또한 대화 이론처럼 우주론을 바탕으로 전제하지만 더 나아가서 인간을 중심으로 우주를 접근하여 하나님의 위대성을 말하고 있으며 모든 가정과 결과물이 하나님의 창조성을 부인하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 놓은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우주도 인간을 만들기 위하여 탄생되어졌다는 말에 한참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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