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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4. 2.

    by. 최딴딴!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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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문학자에 대하여
      천문학자

       

       

       

       

      ① 코페르니쿠스 (1473-1543)
      1400년 동안 잘 내려온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 우주체계는 두 가지 이유로 문제가 되었다. 첫째는 그것을 토대로 만든 역의 1년의 길이가 일정치 않아 크게 불편한 것이고, 둘째는 지구중심설이 많은 결함을 지니고 있어 당시의 천문학자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제멋대로 고쳐 우주체계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 것에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탈리아에서 유학할 때 마침 붐이 일어난 신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 우주가 단순하며 수학적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철저한 플라톤 주의자인 그의 눈에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는 너무나 복잡한 괴물이었다. "도대체 신이 만든 우주가 이렇게 복잡할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피타고라스-플라톤 전통을 이어받아 자연현상은 수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기계철학의 영향으로 자연현상은 반드시 인과관계를 갖는다고 생각하여, 자연은 물질과 물질의 운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기존의 과학체계를 유지하고(원운동과 등속도 운동) 지구와 태양의 위치만을 바꿔 태양중심설을 제기하였다. 그는 천체역학적 지식이 전무했으므로, 토마스 쿤은 그를 최후의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자인 동시에 최초의 근대 천문학자라고 했다. 

       

      ② 티코 브라헤 (1546-1601)
      그는 덴마크의 귀족의 아들로 왕의 도움을 받아 흐벤섬에 "하늘의 도시"라는 관측소를 세우고 평생을 관측에만 몰두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관측의 천재였다. 그가 망원경도 없이 얻은 관측값은 오늘날의 값과 거의 일치한다. 케플러는 그를 '천문학의 불사조'라 했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체계의 수학적인 간결성에 호감을 가졌으나, 그것은 물리학적으로 불합리하고 성서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거부했다.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도 거부하여 그만의 또 다른 체계를 만들었다. 그의 체계는 행성들은 태양의 주위를 돌고, 다시 태양은 행성들을 거느리고 지구의 주위를 돈다. 이는 위 둘을 절충한 것이다. 그는 우연히 카시오페이아자리에서 한 별이 색깔이 흰색에서 노란색, 그리고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을 관측했다. 그가 신성이라 이름 붙인 이별은 달 위의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이 틀렸음을 말해 주었다. 티코는 1577년 유럽 상공에 나타난 혜성을 관측하였는데 그의 관측에 의하면 이 혜성은 화성의 궤도를 지나게 되었다. 이는 수정으로 된 딱딱한 천구를 뚫고 지났음을 의미하므로 수정천구의 개념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혜성은 달아래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도 깨졌다.

       

      ③ 케플러 (1571-1630)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의 보수적 요소를 거부하고 근본적으로 태양중심체계를 바꾸어 놓았다. 그는 학생시절 열렬한 코페르니쿠스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의 궤도 중심은 태양에서 약간 떨어지게 하였는데 이는 지구를 갑자기 1개의 행성으로 떨어뜨리기가 안되어 다소 특전을 부여했던 것 같다. 허나케플러는 이것을 참을 수가 없어 궤도의 중심을 태양과 일치시켰다. 그는 티코와 마찬가지로 루터파 신교도였다. 그는 태양숭배자였고 음악을 아주 좋아했다. 그는 생애에 세 권의 책을 발표하였다. 그 처음이 1596년에 발표한 [우주의 신비]라는 책이다. 이 책은 왜 행성은 6개 (수, 금, 지, 화, 목, 토)인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던졌다. 왜 신이 5개도 아니요 7개도 아닌 6개의 행성을 만든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
      이다. 그는 5개의 정다면체 사이에 6개의 천구를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8, 20, 12, 4, 6면체가 수, 금, 지, 화, 목, 토성 사이에 있어서 지구는 20면체에 외접하고 12면체에 내접하는 공에 붙어 있다는 것이었다. 1600년 케플러는 티코의 조수가 되었다. 티코는 생전에 수학적 계산을 싫어했다. 케플러는 수학은 천재이나 관측은 무지했으므로 둘은 환상의 콤비를 이룬 것이다. 허나 둘은 성격이 맞지 않아 만나자마자 싸우기 시작했다. 결국 파국 직전에 티코가 갑자기 죽게 되어 티코의 수많은 관측자료는 케플러에게 돌아오게 되었다. 케플러는 티코의 관측자료를 분석하면서 행성의 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임을 알게 되고 행성들의 공전속도가 변하는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을 알아내었다. 허나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역시 고대 그리스적 고정관념이 있는 자였기에 원운동과 등속도운동이라는 전제를 깨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것보다 티코의 관측능력을 더욱 확신했다. 그는 케플러 제3법칙인 공전주기의 제곱은 공전 궤도의 장반경의 세제곱에 비례함을 알아내고 이 신이 만든 우주가 원운동과 등속도운동이라는 조화로움을 갖고 있지 않음을 개탄하며 제3법칙의 이름을 "조화의 법칙"이라 지었다. 1609년 그는 [새로운 천문학]이라는 저서에 케플러 제1,2,3법칙을 소개하였다. 조화로운 우주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 그는 1619년 [우주의 조화]라는 제목으로 토성은 베이스, 수성은 소프라노, 화성은 도, 솔, 지구는 미, 파소리를 낸다고 했다. 그리고 지휘는 바로 신이다. 수정천구가 티코에 의해 깨지고 나니 행성을 궤도에 붙잡아두는 힘이 필요해졌다. 이미 예전에 원심력의 개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케플러는 이 문제에 대해 답을 하였다. 우선 태양에서 나오는 신비의 힘 아니마 모트릭식(anima motrix)가 행성들을 접선방향으로 밀어낸다 하였고, 태양과 지구등 행성들은 거대한 자석으로 보아서 자기력이 인력으로 작용한다고 하였다. 물론 뉴튼의 중력하고는 다른 것이다. 즉 아니마 모트릭스와 그에 반대되는 자기력이 균형을 이뤄 행성의 궤도를 유지한다고 설명하였다.

       

      ④ 갈릴레오 갈릴레이 (1564-1642)
      갈릴레이는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이 개발된다는 소식을 접하자 스스로 렌즈 두 개를 가지고 30배율짜리 망원경을 제작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은 그것을 가지고 하늘을 관측한데 있다. 그는 망원경으로 목성의 4대위성(이오, 에우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을 발견하고(이는 모든 것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지구중심설에 결정적인 허점이 됨), 태양의 흑전과 달의 바다. 금성의 위상변화(태양중심설의 증거)를 관측하였다. 갈릴레이는 근대 역학의 창시자이다. 피사에 있던 시절 갈릴레이가 쓴 [운동에 관하여]는 아리스토텔레스 운동이론을 반박한 것이다. 피사의 사탑에서 실험한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가 떨어지는 속도가 같다는 실험은 유명하다. 허나 이것의 사실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⑤ 데카르트 (1696-1650)
      데카르트는 철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천문학에서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그는 기계철학을 확립하여 자연계는 기계처럼 움직이며 그 원리 등은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관성의 법칙을 얘기했는데 이는 직선운동을 뜻하고 천계와 지계의 구분이 없으며 무한 우주의 가능성을 비쳐 보였다. 그는 왜 천체는 원운동을 하는가에 대한 답으로 소용돌이 이론(vortex theory)을 보였다. 이 이론은 세상을 구성하는 3요소로 첫째, 무겁고 딱딱한 것 : 고체등 : 별, 둘째, 빛을 내는 것, 셋째, 투명한 얇은 것으로 에테르를 말했으며 에테르의 소용돌이 운동이 천체의 원운동을 만든다고 하였다.

       

      ⑥ 뉴튼 (1642-1727)
      뉴튼은 철저한 기계철학자 였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세우고 근대 역학 체계를 완성했다.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은 뉴튼에 의해 수학적이고 물리적으로 증명되게 되었다. 그는 1687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PRINCIPIA]란 저서를 발표하여 모든 것을 집대성하였다. 그 책의 1부는 개념설명이 나오고 2부에는 뉴튼의 운동 3법칙인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나오며 3부에는 천체의 운동에 대해 나온다. 뉴튼은 프린키피아의 서문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이 책을 철학의 수학적 원리들로서 제시한다. 왜냐하면, 철학의 임무 전체가 이것-운동의 현상들로부터 자연의 힘들을 탐구하고, 그 힘들로부터 다시 현상들을 보여주는-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⑦ 아인슈타인 (1897-1955)
      상대성이론의 창시자이자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1905년 발표한 '특수 상대성 이론'은 당시까지 물리법칙을 지배했던 뉴턴 역학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으며, 1916년에는 특수 상대성 이론을 일반화한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함으로써 우주를 연구하는 새로운 잣대를 제시하였다. 1922년 광전 효과의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우주를 지배하는 여러 힘들을 하나로 통일시키려는 '통일장 이론의 연구'에 남은 여생을 받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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